광록음대(光祿吟台)

        오석산(烏石山)여맥 으로서, 민산(閩山)이라 칭하고 또 옥치산(玉尺山)이라고도 한다. 당나라시대 부터 민산 보복사(保福寺) 건설을 시작하였고, 송나라 초기에 법상원(法祥院)으로 되였다. 송히년(宋熙年)원년,정사맹(程師孟)이 광록경(光祿卿)복주 지사로서, 한가할대 자주 오셔 시를 읊으며 즐기고 휴식하시였다, 이로 인하여 사승님들이 이산을 “광록음대”라고 부르고, 청제방서(請題榜書) 하였다. 그후로 주인이 여러번 바뀌게되고, 한때에 림측서(林則徐)도 만년에 귀향하여, 초청을받아 광록음대에 이르시셨고, 음대에서 학도 날리여 미담으로 전해지고, 후손들이 여기를 “학등(鶴磴)”이라고 제명하였다.

        1961년에 복주시 제1차례 문화재보호 단위로 공포되였다.